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량 해전 (문단 편집) ==== 반론: 일본 함선은 상당히 커졌다 ==== >또 이르기를, >"적의 수가 매우 많았으니 당초에 풍파에 쓸려 죽었다는 설은 헛소리였다. 그들을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한산으로 후퇴했더라면 형세가 극히 좋고 막아 지키기에도 편리하였을 것인데 이런 요새를 버리고 지키지 않았으니 매우 잘못된 계책이다. 원균이 일찍이 절영도(絶影島) 앞바다에는 나가기 어렵다고 하더니 이제 과연 이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전에도 말했거니와 저 왜적들이 6년간을 버티고 있는 것이 어찌 한 장의 봉전(封典)을 받기 위해서였겠는가. '''대체로 적의 배가 전보다 대단히 크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포와 화전(火箭)도 배에 싣고 왔는가?" >하니, 명원이 아뢰기를, >"이는 알 수 없고 김식(金軾)의 말에 의하면 왜적이 우리 배에 접근하여 올라오자 우리 장사들은 손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패몰되었다고 합니다." >---- >선조실록 30년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007022_003|7월 22일]] 칠천량의 패전을 보고받고 선조가 비변사와 회의를 하면서 일본군의 배가 전보다 대단히 커졌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으니 김응남이 그렇다고 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일본 수군은 바보는 커녕 전쟁의 베테랑들이었으므로 조선 수군에게 호되게 당한 뒤 여러 대처법을 시도했고 그중 하나가 함선의 대형화이다. 일본 수군이 진단한 패인은 화포 대응력 부족이었는데, 당시의 화포는 작렬탄이나 포도탄 같은건 없기 때문에 함선의 크기가 곧 방어력이었다. 작은 배라면 포 두세발에 가라앉을 것도 크기가 크면 계속 떠다닐 수 있고(나무니까) 심지어 여러 발 얻어맞아도 속도만 느려지고 운행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종국에는 주력 함선의 대형화는 무의미하다고 결론짓고[* 배는 크게 만들어도 대형화포 수준이 차이가 나서 맞포격전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맞포격전을 할수 없다면 함선의 대형화는 일본 배의 장점인 기동력만 깎아먹는 꼴이 된다.] 화포대응이 가능한 초대형함 아타케부네를 만들어 세키부네 여러대와 함께 움직이는 일종의 보전합동전술과 유사한 형태의 전술을 구상했다. 참고로 원래 이 전술이 처음 그 위력을 드러냈어야 했던 칠천량 해전에서는 세키부네의 기동전만으로 원균의 조선수군이 휘둘리다 돈좌되고 모든 전투지속능력을 상실한 채 섬멸당했다. 따라서 다음 차례는 명량 해전이었어야 하는데, 사실 명량 해전에서 아타케부네는 기함 이외에는 쓰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울돌목이 너무 극단적인 전장이라 아타케부네와 세키부네가 동시에 진입하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